교회사산책

11111323232.jpg

 

 
고려신학교 교사 건축(1955)
 
고려신학교(현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는 한상동, 주남선, 손양원, 박윤선이 1946년 9월 20일 ‘돈없이 집없이 인물없이' 시작하였다. 일신여학교 교정에서 개교 후 한 학기 만에 초량교회 유치원 그리고 부산 광복동 교사로 이전했다. ‘보따리 신학교’라 불리었다. 광복동 교사가 초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지만, 학생들이 증가하며 공간의 부족을 느꼈다. 그 무렵 부산남교회가 대형교회당을 건축하였기에 신학교가 그 건물을 이용하는 형태로 그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고려신학교는 이때부터 안정기에 들었다. 명동 목사는 말하기를 이 시기부터 고려신학교에 고신성이 형성되었다고 했다. 교수진이 충분치 못했던 기간에 박윤선 교장은 시간마다 불을 토하는 강의를 하였다. 당시 신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공부하였다. 신학생들은 해방 후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공부에 전염하였다. 수요일마다 지역전도를 나가 대신동교회를 개척하였다. 훗날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 해 고신대학 학장과 고려신학대학원장을 지냈던 홍반식 전도사가 대신동교회의 담임을 맡았다.
 
당시 고려신학교의 교사는 부산시청 앞, 용두산 공원 아래에 있었다. 그곳은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다. 학생들이 증가하자, 신학교는 그 학생들을 다 수용할 수도 없게 되고, 당신의 건물이 신학교 교사로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장기적으로 정착할 교사를 새로 마련해야 했다.
 
한명동 목사가 중심이 되어 1954년에 부산 송도에 13,000평의 땅을 구입했다. 신학교용 부지 8천 평, 병원용 부지 5천 평이 한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그 부지는 송도 해수욕장에서 감천으로 넘어가는 야산이었고, 송도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경치 좋은 곳이었다. 야산이기에 대규모 토목공사가 필요했다. 교사 건축을 위해 한부선, 마두원 선교사의 주선으로 한국전쟁 후 주한미국군사원조단(AFAK)의 물자 지원과 미국 개혁교회(CRC)의재정 도움을 받았다. 고려신학교는 1년 간의 공사 끝에 1956년 3월에 송도에 지은 신축 교사로 이전하여 ‘고려신학교 송도시대’를 열었다.
 
당시 고려신학교 교사 건축은 고신교회에 규모에 비해 상당히 큰 것이었다. 교회도 교단도 돈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전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근로봉사를 하였다. 필자(나삼진)가 가진 송도교사 건축 관련 다섯 장의 사진에는 부지를 측량하는 미군들, 양복을 입고 벽돌을 나르는 선교사, 몸으로 거친 공사에 참여하는 여성도들, 그리고 두 가래로 머리를 땋은 어린 고등학생들까지 공사장에서 봉사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내가 ‘서문로교회 60년사’(2012)를 집필하면서 발견한 것은, 서문로교회 여전도회 회원들이 고려신학교 건축을 지원하기 위한 근로봉사를 했다. 며칠씩 현장에서 봉사를 하고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 모습이 그 시대의 고신 교회와 성도들, 우리의 선배들이 신학교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건축이 시작된 1954년은 고신교회가 총회에서 배척을 받고 총로회를 구성한 지 두 해가 지난 시점이었다.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교회쇄신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당시 고려신학교 강의실에서는 박윤선이 열변을 토하였고, 새벽마다, 경건회 시간마다 뜨겁게 기도하였다. 전국교회가 고려신학교와 복음병원을 위해 기도하였고, 졸업식이면 전국교회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함께 참석해 큰잔치를 벌였다.
 
고려신학교 초기는 고신교회가 은과 금을 가지고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오직 주의 은혜’를 구하며 살았다. 지금은 교회가 많은 ‘은과 금’을 가지고 있고, 또 목회자의 생활도 풍성해졌다. 생각해 보면 오늘의 교회도 지도자들도 ‘그때 그 시절’의 열정과 헌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려신학교는 설립 초기 ‘보따리 신학교’를 하면서도 영적인 장수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지금의 고신대학교와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은 한국교회 가운데 최고 수준의 건물과 도서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훌륭한 교수들 아래에서 얼마나 훌륭한 인재가 배출되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글과 사진: 나삼진 목사. 페이스북 글 (2020.09.15)
 
저작권자  리포르만다무단 전재-재배포-출처 밝히지 않는 인용 금지

 

choicollege@naver.com

 

▶ 아래의 SNS 아이콘을 누르시면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습니다.

 

 


  1. WCC 따라가면 교회가 죽는다.

        WCC 따라가면 교회가 죽는다   WCC 제11차 총회, 2022, 독일 카를스루에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이하 WCC)는 제11차 총회를 2022년 8월 31일부터 9월 8일까지 독일 카를스루에(Karlsruhe)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세계를 화해...
    Date2021.04.27 Byreformanda Reply0 Views614 file
    Read More
  2. 김세윤과 최덕성의 칭의론 충돌 사건

    김세윤 박사(왼편)과 최덕성 박사   김세윤과 최덕성의 칭의론 충돌 사건   순수한 물이나 정화된 물에 극소량의 오염물을 첨가하면 순수성과 정화수다운 가치를 잃게 된다. 도금 처리한 금은 금처럼 보이지만 완전한 금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전하다....
    Date2021.02.01 Byreformanda Reply1 Views1502 file
    Read More
  3. 주기철 목사직 복권 해프닝에 대하여

          주기철 목사직 복권 해프닝에 대하여   한국교회는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면서 자조적(自嘲的)인 해프닝을 연출한 바 있다. 일제는 한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창시개명, 일본어교육 등 문화말살정책을 감행했다. 형벌과 고문으로 식민지 백성들을 굴복시켰...
    Date2021.01.15 Byreformanda Reply0 Views496 file
    Read More
  4. 고려신학대학원 졸업생 1947-2007

                  고려신학대학원 졸업생 명댠 (1947-2011)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은 1946년에 고려신학교로 출발했다. 아래는 졸업생 명단(1947-2011)이다. 출옥성도들 중심으로 부산에서 시작한 고려신학대학원은 1998년 가을학기부터 천안 교정에서 목...
    Date2021.01.04 Byreformanda Reply0 Views2345 file
    Read More
  5. 스코틀랜드교회의 마녀사냥

          스코틀랜드교회의 마녀사냥   우리는 교회사에서 위대한 믿음의 거인들을 만나 존경의 무릎을 꿇기도 한다. 바울,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뱅, 녹스를 공부하다 보면 그들은 우리와 성정이 다르고, 절대 무오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나는 원죄...
    Date2020.12.06 Byreformanda Reply1 Views1147 file
    Read More
  6. 고려신학교 교사 건축(1955)

        고려신학교 교사 건축(1955)   고려신학교(현 고신대학교와 고려신학대학원)는 한상동, 주남선, 손양원, 박윤선이 1946년 9월 20일 ‘돈없이 집없이 인물없이' 시작하였다. 일신여학교 교정에서 개교 후 한 학기 만에 초량교회 유치원 그리고 부산 광복동 ...
    Date2020.09.15 Byreformanda Reply0 Views405 file
    Read More
  7. 롤라드인들의 성경사랑

    롤라드인들의 성경사랑   3. 성경사랑   롤라드 신앙운동의 최대의 기여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대중에게 심어주고 확산시킨 것이다. 신앙과 행위의 최고의 권위가 성경이라는 신념을 대중화했다. 종교의 최고 ‘권위’가 교황 또는 로마교회의 조...
    Date2020.07.25 Byreformanda Reply0 Views644 file
    Read More
  8. 롤라드 신앙운동

    옥스퍼드대학교의 일부 롤라드 신앙운동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하루아침에 발생하지 않는다. 여러 요소, 요인들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갈등을 야기하고, 운동을 확산시키다가 어느 시점에서 주목받는 사건으로 발발한다.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이라고 일...
    Date2020.07.25 Byreformanda Reply0 Views1394 file
    Read More
  9. 존 위클리프의 개혁신학

      존 위클리프와 롤라즈 전도자들   존 위클리프의 개혁신학   16세기 종교개혁은 중세후기 신앙운동과 신학자들이 놓은 주춧돌 위에 건축된 장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프랑스의 왈도, 영국의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얀 후스, 피렌체의 사보나롤라, 네덜란드 지...
    Date2020.07.21 Byreformanda Reply0 Views864 file
    Read More
  10. 존 위클리프: 교회개혁의 새벽별

    존 위클리프에 대한 이단심문 상상도 존 위클리프: 교회개혁의 새벽별     종교개혁의 새벽별, 영국인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c. 1330-1384)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대조적이다. 한 편에서는 중세후기 사회와 교회 체제를 변혁시킨 이단자로 여기고 그의 ...
    Date2020.07.21 Byreformanda Reply0 Views885 file
    Read More
  11. 왈도파 신앙운동과 롬바르드파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드 마을   왈도파 신앙운동과 롬바르드파 4. 롬바르드파   리용의 빈자들이 점차 많아지고 명성이 높아지자, 이 운동에 경쟁그룹이 등장했다. 알프스산 동북부의 롬바르디(Lombardy) 지역의 빈자들 곧 롬바르드파 무리였다. 오스카의 두...
    Date2020.06.14 Byreformanda Reply0 Views826 file
    Read More
  12. 리용의 빈자들

    리용의 빈자들 1   1. 순회설교자 무리   리용의 빈자들(Poors of Lyon)이 펼친 왈도파 신앙운동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외형적 교회조직 밖에도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인 권위를 다만 제도화된 외형의 교회가 아닌 오직 성...
    Date2020.06.13 Byreformanda Reply0 Views666 file
    Read More
  13. 위대한 이단자 피터 왈도

        왈도파가 신학교로 사용하던 건물, 피드몬트 산악지대(이탈리아 북부)   위대한 이단자 피터 왈도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 프란치스코는 2015년 6월 22일 12세기에 설립된 이탈리아 북부의 토리노의 왈도파 교회를 찾았다. 교회의 무자비한 핍박을 ...
    Date2020.05.24 Byreformanda Reply0 Views1194 file
    Read More
  14. 아타나시우스 3: 월계관

    아타나시우스, 벽화 아타나시우스 3: 월계관   6. 사막의 수도사들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 가까운 사막에는 마귀, 맹수, 도둑이 들끓었다. 기도와 관상에 몰두하는 수도사들은 가혹한 자기 절제와 금욕생활로 영적인 순수함과 완덕을 추구했다. 자신의 ...
    Date2020.05.23 Byreformanda Reply0 Views468 file
    Read More
  15. 아타나시우스 2: 이단의 술수와 반격

    여호와증인회(현대판 아리우스주의) 세계 본부 아타나시우스 2: 이단의 술수와 반격   아리우스는 니케아공의회의 결정에 승복하지 않았다. 자세를 낮추고서 재기를 꾀했다. 변방으로 추방된 뒤에도 감독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황제가 철학과 신학 논쟁을...
    Date2020.05.23 Byreformanda Reply0 Views586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